백연암의 유래(由來)
울산광역시 북구 연암동蓮巖洞 오봉산五峯山 아래의 시여평에는 사람이 선 것 같은 바위가 있고 아레에는 작은 늪이 있어서 이것을 옥정玉井 혹은 금당이라 불렀다. 연암은 본시 시여평(詩餘坪)이라고 하던 곳이다.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에 이곳 바위에 성스러운 흰 연꽃 무늬가 수놓은 듯 피어나와 고려말의 고려말기 문신이며 대학자 목은 이색牧隱李穡의 부친이신 가정 이곡稼亭李穀선생과 울산에 유배되어 있었던 설곡 정포雪谷鄭誧선생이 시를 남길 정도로 이름이 나서 그 바위 이름을 백 연암白蓮岩이라 하였다. [참고로 시여평이라 함은 이곡과 정포선생이 백연암시를 지어 동국여지승람에 실어 전해오고 있어 이로 말미암아 시여평이라 한 것으로 추정] 이조 중종中宗 때에 이르러 8월에 한 가지에 두 송이의 연꽃이 옥정玉井에서 우뚝 피어 꽃이 바위를 덮는 듯 하였다.
또한 그 잎은 동서로 뻗어 마치 연뿌리 배와 같고 그 위에 흰꽃이 피었으니 그 모양이 큰 주발 과 같았다.
그러나 이 흰 연꽃이 정정하고 수려하여 겨울이 지나도 시들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기이한 상 서라 하여 구경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장사진을 이루았다. 이러한 일로 말미암아 마을 지명을 백연암白蓮岩이라하여 오다가 영조英祖,정조正祖 때와 고 종高宗 31년(1984년)에는 연암連岩..1911년에도 연암..1914년에는 비로서 지금 이름의 연암 蓮岩으로 귀착하게 되었다.
이곳에 백연암종회 고향조이신 간헌공의 아드님이신 휘 대위大渭 반와공盤窩公께서 정자를 짓고 연꽃의 별칭別稱인 군자君子의 뜻을 취하여 군자정君子亭으로 명명命名하시니, 재종제 再從第 이시고 삼현파 근원의 한 분이신 대유 삼족당大有三足堂께서는 이 정자의 기문記文을 지으셨다.
이후 군자정을 시제로 후손들과 많은 문인들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
특히 몇대에 걸친 울산부사蔚山府使의 시와 임진란때 활동한 여러 의병장들의 시가 있어 지역 사회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백연암 문중이 발간한 백연암실록은 이를 뒤받침 함에 부족 함이 없어 우리 후손들은 긍지를 갖으시길 바라며 본글을 올립니다.